[공개]/영화

불변성의 무형성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형태 ;The shape of water(2018)>




사랑에 형태가 존재할까? 존재한다면 그것은 어떤 모양이라 해야 할까?

커트 코베인은 Heart-shaped box에 담긴 마음 그 자체를 사랑이라 말하며 찢어질 듯 가슴 아픈 비명을 내질렀지만, 이 영화는 물이라는 추상적인 형태를 사랑이라는 것으로 구현화했다. 둘은 다르지만 다르지 않다. 추상적인 감정을 어떤 모양의 틀에 담아내는가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닌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그 추상적인 감정에 감히, 사랑이라는 위대한 단어를 붙일수만 있다면.


우선적으로 나는 이 영화를 10점 만점에 7점을 주고 시작하겠다. 기예모르 델 토로 감독 특유의 서술 트릭과 아름다운 영상미, 격동적이지는 않지만 결코 잔잔하다 볼 수 없는 서정적인 감정선과 배우들의 미묘한 심리 연기, 그 모든 것들의 조심스러움을 대변하는 격조 높은 음악들까지 내 취향에 찰떡콩떡이라 할 만 했다.

하지만 전지적 ((((((((((나)))))))))) 시점에서 다소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도 분명 존재했고, 몇몇 부분에서 너무 물 흐르듯 애매하게 얼버무리는 부분들이 있었다. 전적으로 관객의 상상력에 의존하는 파트들 말이다. 그런 부분들 때문에 10점 만점에 7점을 주고 싶다. 아니… 8점? 7점? 8점? 으음…


어쨌든 기예모르 델 토로 감독, 샐리 호킨스/더그 존스 주연의 영화, 2017년 황금사자상과 더불어 2018년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에 빛나는 이 대단한 작품의 리뷰를 내 좁은 식견으로 한 번 풀어보고자 한다.


지금부터 스포일러는 기본, 전지적 주관 시점은 필수, 몇몇 부분에서의 비판은 선택인 리뷰를 끼적입니다. 짜잔!





(습관처럼) 감독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자.

기예모르 델 토로. 멕시코 출신의 소설가이자 영화 감독인 그의 작품 중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단연, <판의 미로>와 <퍼시픽 림>, <헬 보이> 등일 것이다. 사실 이 세 작품만 봐도 대략적인 성향이 그려질 것이다-물론, 사알짝 성격이 달라 보이긴 하겠지만서도ㅋㅋㅋㅋㅋㅋ-. 특히 이번 작품, <Shape of water>는 판의 미로와 약간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조금 이따 이야기해도 되니 우선 차치하고.


여주인공 샐리 호킨스. 너무나 익숙한 페이스여서 어디에 나왔나 했더니 세상, <블루 재스민>과 <고질라 2>, (내 사랑스러운 콜린 파렐이 출현한) <카산드라 드림> 등에 나왔던 배우였다. 굉장히 가녀린 이미지의 여배우이지만 결코 그 가녀린 이미지를 소모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배우이면서, 무조건적인 미인형이라기 보다는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치는 독특한 분위기의 배우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웃을 때 꽃처럼 예쁘고, 그 특유의 잘록한 발목이 영화 내도록 보는 이들의…까지는 모르겠고 내 시선을 잡아 챈 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생선맨…… 이라고 하면 좀 미안하지만 그 상대 배우로 나온 분이 더그 존스라는 분이더라고요? 재송함니다… 특수분장이 너무 쩔어주셔서 몰라 봤는데 <판의 미로>에도 출현하신 분이셨네요… 이게 다 기예모로 감독 탓입니다. 감독의 특수분장 사랑을 원망합시다


스트릭랜드 역의 마이클 섀넌. 이 사람이야 뭐 <맨 오브 스틸>이나 (내가 한때 엄청 빨았던 에미넴의 자전 영화)<8mile>에도 출현한 사람이니 얼굴이야 익숙할 테고, 의외의 씬 스틸러는 ‘엘라이자 에스포지토(샐리 호킨스)’의 조력자로 나온 젤다 역의 옥타비아 스펜서. <히든 피겨스>와 <설국 열차>만 봐도 이 분의 연기 커버링 범위가 참 넓다는 걸 알 수 있다. 어쨌든 배우 얘기는 여기까지… 벌써 배우 얘기로만 뭔 썰이 이리 길어지냐;





“Unable to perceive the shape of you, I find you all around me. Your presence fills my eyes with your love, It humbles my heart, For you are everywhere.”




대개 헐리우드 영화는 아니, 상업적으로 흥행한 작품들의 경우는 그 줄거리를 길어야 두세 줄, 평균적으로 약 한 줄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고 한다.

예술영화인 척 하는 이 영화도 사실 그러하다. 영화의 내용은 마지막 장면의 자일스(리처드 젠킨스)의 나레이션으로 요약된다. “(나를 사랑하는 혹은 내가 사랑하는) 당신의 형태를 알 수 없다”는 말로 말이다. 이 말은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을 관통하는 하나의 핵심 주제이며, 영화의 제목이자, 엘라이자의 근원이고, 어인을 존재하게 만드는 모든 것이다.


볼티모어의 항공우주 연구소의 청소부로 소속된 엘라이자는 농아이다. 그녀는 말은 할 수 없지만 들을 수 있고, 자신의 의견 또한 충분히 피력할 수 있으며, 스스로에게 솔직하다.

그녀는 극장 윗층에 세 들어 살며 자신과 같이 혼자인 이웃 자일스와 직장 동료 젤다와만 교류를 가지고 있는 여자이다. 그녀는 매일 저녁에 일어나 욕조에 물을 받고, 계란을 삶은 뒤, 타이머가 울릴 때까지 욕조의 물 속에서 자위를 한다. 무채색의 단조조운 의상을 고르지만 구두만은 매일 손질을 하고, 젤다의 도움으로 매번 아슬아슬하게 지각을 면하며, 모든 이들의 대화에 무덤덤하게, 하지만 무신경하지 않아 보일 정도로만 반응한다.


그런 그녀의 생활에 이변이 벌어진 것은 스트릭랜드라는 불쾌한 존재와 더불어 찾아 온, 어인이 계기였다. 그 어인은 이른바 문명화(Civilized) 되지 않은 곳에서 ‘신’으로 추앙받던 존재였지만 소련과 미국이 세계의 흐름을 주도하고, 미개척된 타 문명들이 멸시되는 백인중심주의적 사회 분위기 속에선 그저 야만성을 온 몸으로 드러내는 미개한 짐승에 불과할 뿐이었다. 스트릭랜드는 그 미개한 짐승에게 손가락을 잃지만 흑인인 젤다와 농아인 엘레노아에게 자신의 권위를 자랑하며 스스로를 신이라 격상하는 것을 서슴치 않으며, 그 미개한 짐승을 묶어둔 채 전기충격기로 지지는 행동에도 일말의 죄책감 따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참고로 이 영화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부분들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감독은 백인중심적이던 당시의 분위기를 한 인물에게 초점을 맞추어 신랄하게 비판하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소련에 대한 (상대적인) 올려치기가 들어가 있어 그리 달갑지는 않지만 어쨌든, 당시의 무시와 차별의 풍토를 짚고 넘어가는 점이 좋았다. 이는 뭐 중요한 게 아니니까 차치하고.


스트릭랜드는 엘라이자에게 성욕을 품지만 엘라이자는 처음 수조가 이 연구소에 들어왔던 그 순간부터 어인에게 상당히 복잡미묘한 감정을 품고 있음을 조금씩 나타낸다. 이는 초반에 동물을 길듯이듯 제 식사를 나누어 주는 장면-여기에서의 매개는 삶은 계란-부터 나타나는데 그런 그녀의 모습을 호프스테틀러/드미트리(따로 빼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 배우분은 내 인생영화 중 하나인 <미스 슬로운>과 더불어 <세븐 사이코패스>, <컨택트>, <애프터 스쿨>등의 영화에 나와 꽤 나의 뇌리에 깊이 박힌 배우분 중 하나이시다. 연기가 은근히 기깔나시지ㅇㅇ)에게 노출되는데 이 부분에서부터 영화는 무척 자연스럽게, 미국과 소련의 대립 구조를 드러낸다. 사실 드미트리는 순수하게 그 어인을 관찰하고자 하는 과학도임과 더불어-물론 내가 보기에는 100퍼센트 순수한 학구적 열정만 있다고 보기는 힘들었지만 최소한 90% 이상은 선의로 가득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련의 스파이였던 것.


이 어인을 죽여 해부하려는 미국의 입장과, 이 어인에게 동정인지 애정인지 혹은 자신과 같은 동질감인지 모를 감정을 느낀 엘라이자, 그리고 그 어인을 살리고 싶어 하는 드미트리의 역할은 한 점에서 만나 하나의 우연 아닌 필연을 만들어 낸다.

드미트리는 어인을 미국의 손에 넘기지 않고 제 손으로 죽이기 위해 연구실의 전원을 전부 차단하려 하고, 엘라이자는 그 어인을 방생하고자 하는 것. 그 타이밍이 맞물리며 결국 어인은 엘라이자와 젤다, 자일스, 드미트리에 의해 구조되고 엘라이자의 집 욕조에서 거친 숨을 토해낸다.


그리고 어인의 환경이 연구실의 수조에서 엘라이자의 욕조로 바뀌는 순간, 엘라이자가 가지고 있던 감정이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만지려 하는 어인을 뿌리치지만 이내 그의 욕조로 찾아가 옷을 벗는다. 그녀가 가지고 있던 감정이 명백히 성애의 감정이며, 그 성애의 감정에 동질감과 자신의 외로움이 모두 섞여 있었음을 나타낸다.

둘은 대화를 할 수도 없고, 같은 감정을 교류 할 수도 없다. 눈을 마주치고, 피부를 통해 얄팍한 성욕과 감정을 간신히 전달하는 것이 전부인 사이이다. 엘라이자는 매일 일을 나가야 하고, 어인은 그 욕조 안에서 조금씩 나약해진다. 엘라이자는 그와의 사랑을 위해 욕실 문을 단단히 틀어막고 물에 빠진 것처럼 욕실 안을 물로 가득 채우지만 그것은 고작 문 한 칸 열면 빠져나갈 정도로 얄팍한 순간의 애정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둘의 자칫, 누군가 건드리기만 해도 파삭 하고 부서져 내릴 것만 같은 가냘픈 사랑은 스트릭랜드에 의해 깨진 뒤 다시 재구축 된다.




영화의 백미는 바로 이 부분부터이다.

제 좌천의 위기에 미쳐버린 스트릭랜드, 즉 스스로가 잘난 줄 알던 자칭 ‘신’이 자연적인 존재이자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신’에게 단죄되는 장면 말이다.




스트릭랜드는 드미트리가 소련의 스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를 죽기 직전에 고문하여 ‘청소부들’이라는 힌트를 얻어낸다. 그는 젤다의 집에 찾아가 그녀의 남편에게 ‘농아의 집에 있다’는 단서를 찾아내고, 엘라이자의 집에서 ‘10일. 비/부두’라는 최종 종착지를 알아낸다. 그리고 엘라이자가 어인을 자연으로 돌려보내주며 최후의 인사를 하는 짧은 순간을 참지 못하고 어인과 그녀를 총이라는 인간의 무기로 쏘아 버린다.


하지만 어인은 총을 맞고도 죽지 않았으며, 스트릭랜드는 자신의 존재가 결국 신이 되지 못했음을 깨닫고 진정한 신에 의해 응당한 처벌을 받는다. 자일스에게 엘라이자의 시신을 건네받은 어인은 그대로 그녀를 안아든 채 물 속으로 뛰어든다. 영화는, 그렇게 끝이 난다.




물론 영화를 보고 온 분이라면 ‘이 이후에 나레이션은 왜 넘어가?’라고 하겠지만 내가 앞서 말한, ‘서술 트릭’에 대한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보는 이들의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무척이나 열린 엔딩이라 생각한다. 영화는 시작할 때 엘라이자의 이웃이자 객관적인 제 3자인 자일스의 나레이션으로 문을 연다. 그리고 물에 빠진 그 이후의 상황, 즉


‘그렇게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는 부분이 자일스의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준다. 나는 이 부분에서 절로 무릎을 탁 치고 말았다. 물속에서 엘라이자의 숨을 되돌려 준 어인의 존재는 진정 신일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인간의 상식을 벗어난 기괴한 생물일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속에서의 엔딩은 자일스의 나레이션과는 별개로, 어떤 식으로든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왜냐?


자일스 또한 물속의 상황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엔딩은, 자일스의 바람일 수도 있기 때문에.






그리고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내가 꼭 궁예하고 싶은 부분이자 영화를 한 번 더 본 뒤 첨언하고자 하는-부분이 몇 부분 있다.


첫번째. 나는 영화 초반부터 나타난 엘라이자의 목에 난 세 줄의 상처를 꽤 유심히 보았다. 그것이 ‘죽음에서 살아 돌아 온 흔적’인지, ‘그녀의 운명을 암시하는 복선’인지가 꽤 궁금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후자로 판명났다. 그녀의 목의 세 줄. 그것은 내가 위에서 언급한 “어떤엔딩일까요~?”라는 질문과 별개로, 그녀가 얼마든지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꽉 닫힌 엔딩을 시사하는 복선으로 작용한 것이라 추정된다.


두번째. 이 영화를 보며 생각난 것이 몇 가지 있다. 동화적인 구성과 더불어 인어공주를 연상케 하는 내용, 하지만 그 골자는 어느 정도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를 연상케 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이 부분까지 하나하나 말하면 안 그래도 정신산만한 리뷰가 정말 조현병 환자의 의식 체계처럼 엉망으로 길어질 거 같아 각설하고자 한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캐해를 본 사람이라면 아마 내가 어느 부분에서 비슷하게 느낀 것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세번째. 그럼에도 ‘보상과 처벌’에 맞춰진 전형적인 권선징악 구조가 캐해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라 볼 수 있다. 이 영화가 무척이나 동화적이라는 것도 이 생각과 맥을 같이 한다.

이는 마치 <에로스와 프쉬케>를 연상케 하기도 하는데 ’미지의 존재’와의 사랑이라는 점과 신화적이라는 점이나 ‘외모가 아닌 그저 나로서를 사랑해 주길 바라’라는 주제의식과도 관통되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이 신화와도 흐름이 다르다. 여러가지 의미로 오리지널리티를 살렸다 볼 수 있다.

대개 이종족과 인간의 사랑이라는 내용은, 인간의 의심과 그에 따른 처벌, 용서와 사랑이라는 결말로 흐르기 마련이건만… 이렇게 가자니 또 ‘착한 주인공은 상을 받고 나쁜 악역은 벌을 받는’ 다른 신화들이 줄줄 떠오르네 ;ㅅ; 여기까지 하자…






어쨌든… 아 이제 제발 끝내야지… 이거 왜 또 이렇게 길어져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어쨌든! 다소 퀴어적인 내용을 포함한, 그렇지만 본질적으로 인간은 혼자라는 감성을 팍팍 뿌린, 그 혼자인 존재가 어떻게 둘이 되고 다시 하나로 합쳐지는지에 대한 모든 함의를 꾹꾹 눌러담은 영화였다. 말하고 싶은 내용은 아직 한참 남았지만 가급적 자정 전에 올리고자 하는 욕망이 가득하기에… 나의 조잡하고 주관 일색이며 정리의 노력은 1도 보이지 않는 엉망인 리뷰는 여기까지.



참고로 다소 급박하게 본 고로 나는 이 영화를 한 번 더 볼 것이고, 그 때의 내 감정은 지금의 리뷰와 또 다른 격차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델 토로 감독의 수작 로맨스임은 결코 부정할 수 없고, 판의 미로와 약간의 맥을 같이하는 동화같은 그리고 신화적인 내용이며, 꽉 닫힌 해피엔딩을 시사하는 열린 결말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역시 엔딩까지 적고 나니 별점을 수정하고 싶네요. 난 10점 만점에 8점!!!!!!!!!! ⭐️⭐️⭐️⭐️

참고로 엔딩곡이자 주제곡인 You‘ll never know(ft. Renee Fleming)이 무척이나 좋았다. 내 취향이어서 엔딩 스크롤 올라갈 때까지 듣고 나옴.



어우 리뷰도 진짜 배운 사람이 써야 하나봐... 진빠진다 흑흑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끝! 끝끝끝! 흑흑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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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고보니 빨간색의 의미와 여성성에 대한 부분을 언급 안 했네... 아 몰라ㅠ 내가 빠가라 그래 빼애애애애애애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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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안 오는 변방의 티슷따위 저급지능 전시회로 딱이지

  3. Favicon of http://kaiserin13.tistory.com BlogIcon JezE/제제 수정/삭제 답글

    지금 보니 단점도 제대로 안 짚었네...

  4. Favicon of http://kaiserin13.tistory.com BlogIcon JezE/제제 수정/삭제 답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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